MOM토토 듣기만 하던 야구, 느끼는 야구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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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가 좋았다. 장애인 시설에 살던 시절, 야구는 내게 자유를 느끼게 해줬다.
홈런이 터졌다는 라디오 방송 소리를 들을 때면, 나도 야구공이 되어 더 넓은 세상으로 날아갈 듯했다.
하지만 직접 야구를 볼 순 없었다. 사실상 외출이 불가능한 데다 티브이(TV)조차 없었던 시설에선,
야구를 그저 귀로 듣고 그라운드를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눈으로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그 당시 내게는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입소자가 티브이를 갖고 시설에 들어왔다. 이렇게 기쁠 수가.
드디어 눈으로 야구를 볼 수 있는 날이 왔다. 야구 중계를 하는 날이면,
여러 명이 그 사람 방에 모여 함께 야구 경기를 봤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 어쩔 수 없이 각자 방으로 돌아가야 할 때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끝까지 시청하고 싶었는데…. 라디오를 켜고 밥알을 씹으며, 나는 아까 보던 야구를 곱씹었다.
해태 타이거즈의 열렬한 팬이었다. 특히 선동열과 이종범을 좋아했다. 10년간 해태 타이거즈는 1위만 했고, 그들은 내 자랑이기도 했다.
시설에서 해태와 다른 팀 중에 누가 이길지 내기를 하곤 했는데, 매번 해태가 이겼기 때문에 나는 항상 승자였다.
진 쪽에선 과자랑 음료수를 샀는데, 그 시절 시설에선 정말 특별한 음식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온다.
그러나 승리의 날이 영원하진 않았다. 해태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후 잘하는 선수들이 줄줄이 다른 팀으로 이적했고,
나는 그만 타이거즈에 흥미를 잃었다. 결국 새롭게 응원할 팀을 찾기로 했다.
그렇게 2001년 기적 같은 한국시리즈 우승을 해냈던 두산 베어스가 내 새로운 자랑이 됐다. 그저 티브이 속 영웅들이었지만 말이다.
처음 직접 야구를 본 것은, 그 후로도 10년 넘는 시간이 흐른 뒤였다.
2008년 시설 운영 재단 비리 문제로 장애인 권리에 관심을 갖게 됐고,
2009년엔 혜화동 마로니에공원에서 노숙 투쟁을 시작했다. 비록 생계 문제로 바로 시설에서 나오진 못했지만,
이때부터 조금씩 자유를 얻었다. 그렇게 2012년, 드디어 처음으로 야구를 보러 갔다.
꿈에서만 그리고 그리던 야구장…. 1990년, 21살 나이로 시설에 들어간 지 22년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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